영화, 감독을 말하다 (지승호, 수다, 2007)

인터뷰 읽는 걸 좋아하던 차에 지승호란 전문 인터뷰어에 대한 글을 읽게 됐고 그 호기심이 닿아
이번 '영화, 감독을 말하다'를 읽게 됐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11번째 인터뷰집이고 그 대상이
영화 감독이란 게 여러가지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매체에서 독립해 인터뷰 하나로 사는 사람은
뭐가 다를까. 11번째 묶인 인터뷰집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등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책은 감독 여섯명을 상대로 진행되는데 정해진 질문 리스트에서 순차적으로 질문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대화를 통해 닫힌 문을 하나씩 열어가며 인터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인터뷰어가 그 대상에게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건 영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반대의 방식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뭔가 가지런히 정리된 자리에서 차분하게 질의를 받는 생방송을 보는 게 아니라 조명이 반쯤 잠긴
술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예상 못 했던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인터뷰어와 거리를 두다가 인터뷰 후반에 그 거리가 좁아지는 박진표 감독의 인터뷰나 
무슨 편견이 있는지 상당히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끝까지 고수하는 임상수 감독의 인터뷰 흐름이
흥미로웠고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에게 듣는 영화 외의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권이야기가 이상하게
와닿더라. 김태용 감독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좋았고. 박찬욱 감독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인터뷰를 읽으면 읽을수록 한국관객이 그에게 거는 기대감이 왜곡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 지승호의 강점은 그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게 만드는 데 있는 거 같다.
나름 매체에 이골이 난 감독들에게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뽑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책을 읽고
있으면 막차시간 됐는데 왠지 일어나기 싫은 술자리에 앉아서 고민을 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런 거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왠지 대화기술에 관한 고등학습 서적 같기도 하고(..) 소통을 위한 저자의 많은
준비와 프로의 자세가 밑바닥에 짙게 깔렸겠지만 왠지 사람으로서 한마디라도 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인-
그런 묘한 매력이 이 책의 개성이자 저자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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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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